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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갤러리

화가 장욱진이 그린
집이라는 작품

행복갤러리는 근현대의 한국 화가들의 작품 속에 비친 가족의 모습과 행복의 풍경을 그려보는 칼럼입니다.
그림 속으로 들어온 가족의 얼굴과 숨결을 통해 나의 얼굴을 비춰봅시다.

단아하고 쾌활한 선의 집
									완전한 행복을 그린 장욱진 단아하고 쾌활한 선의 집
									완전한 행복을 그린 장욱진

글. 박영택(경기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가족, 자료제공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가족, 자료제공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첫 번째 화폭 가족

캔버스에 유채, 19.3 x 22.7cm, 1975

장욱진(1918-1990)의 그림은 단아하고 따뜻합니다. 아주 작은 화면 전체를 흙빛으로 은은하게 적신 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선과 형태, 담담한 색채로 동산과 나무, 집과 사람, 동물들을 그렸습니다. 마치 시인이 언어를 절제하듯 그는 선이나 색을 극도로 절제한 조형 시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림은 절제를 거듭한 끝에 오는 풍요로움이 스며 있습니다. ‘장욱진’하면 동산과 나무, 집, 가족이 조그맣게 요약된 형태로 등장하는 소박하고 작은 그림들이 떠오릅니다. 그는 평생을 철저하게 사물을 새롭게 보려는 눈, 그리고 전적으로 작업에만 몰두하며 철저한 자유를 꿈꾸고 가장 단순한 삶을 추구한 화가로 기억됩니다. 마치 그런 그의 인생처럼, 그림들 역시 간결한 선과 요약된 형태로 세상을 관조하듯이 순수한 시정의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상형 문자와 같은 원초적인 형태만을 입고 나열식 구도로 펼쳐져 있는데도 그의 그림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짜임새 있게 느껴집니다.
가족, 자료제공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가족, 자료제공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두 번째 화폭 가족

45x38cm, 캔버스에 유채, 1988

장욱진은 유화 물감을 의도적으로 묽게 사용합니다. 수묵화의 담백성과 투명한 정신성에 근접하면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드러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는 서양화 혹은 서양화 재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탐구한 결과입니다. 장욱진의 모든 그림은 결국 가족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품 속 가족들은 관람자를 마주보고 있습니다. 그림 속 작가이자 가장은 전통적인 가부장적인 모습이기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존재 그 자체로 보여집니다. ‘아버지-어머니-자녀’로 구성된 ‘완전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합니다. 장욱진은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적 문제에는 거의 무관심 했습니다. 과거 선비들은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는다’(不治家産)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길쌈을 비롯한 온갖 경제활동은 여성의 몫이었습니다. 유교는 경제적 측면에서도 여성의 노동을 강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장욱진은 그런 면에서 다분히 전통적인 선비관을 내재화한 모더니스트화가입니다. 그 같은 착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 한국의 근대화였습니다. 돈 자체를 무척 혐오해서 돈벌이를 의도적으로 멀리한 결과 생계와 아이들 교육 등은 부인이 전적으로 도맡았은 것이죠. 한편으로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하지 못한 데에 따른 미안함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족들에게는 무심한 편이었지만, 내심 그렇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아쉬움을 그림으로 그렸을 것입니다.
엄마와아이들, 자료제공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엄마와아이들, 자료제공 (재)장욱진미술문화재단
세 번째 화폭 엄마와 아이들

캔버스에 유채, 16x16cm, 1974

장욱진의 가족 그림에는 항상 아이가 등장합니다. 화가가 그린 아이는 항상 가족의 핵심이자 천진무구한 자연의 표상이죠. 또한 인간의 희망과 미래를 품은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사실 그에게는 몸이 아픈 막내아들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병사했습니다. 그런 아픈 경험이 가족도를 그리게 한 동인이었을 겁니다. 장욱진은 50년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가족 해체를 목도했고 그에 따라 전통적인 가족풍경을 희구하고 염원했을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화폭에 그렸을 것입니다. 그의 그림 속 가족은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듯 보입니다. 그림 안에서 가능한 이상적인 가족상입니다. 그 이상적인 가족상은 현실과 시간의 제약과 무관하게 행복한 가족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 하면 쉽게 떠올리는 그의 그림입니다. 그의 그림 속 가족은 이상적이기에 더욱 완벽하게 행복해 보입니다. 가족 그림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 지속된 핵심적인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집도 작품이다” 화가 장욱진이 즐겨 했던 말입니다. 그에게 집은 가족과 생활하는 안식처이자 예술적 영혼이 깃든 아뜰리에였습니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모두 힘들고 지친 시기, 가족은 가장 따뜻한 안식처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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