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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례

행복미담(美談)

첫번째 사례

2018 가족정책서비스 이용 우수사례_관계개선부분 우수상

☞ 2018 가족정책서비스 이용 우수사례 관계개선부분 우수상의 이야기를 통해 센터의 공동육아나눔터에서 진행된 공감독서 활동이 끼친 엄마와 사춘기 아들의 관계 변화를 살펴봅니다.

너와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

-구미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박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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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 인생에 끼어든 회색빛 먹구름

“내가 다 알아서 해, 알아서 한다고!”

가방을 멘 그가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어요. 닫힌 문을 우두커니 바라보았죠. 어느 때부턴가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알았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에요. 그 말을 들을 때면 뭔가 커다란 벽이 눈앞에 떨어지면서 시야가 가려지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그’는 중학교 1학년이 된 첫째 아들이에요. 그날도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단지 전날 학원에서 온 가정통신문을 보고 코딩 수업 신청 여부를 물어보던 중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우리나라에 중학생이 있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는 정말 저와는 상관없는 농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주위 사람들이 아들은 무뚝뚝해서 키우기 어렵다고들 했어요. 그렇지만 첫째 아들은 어릴 적부터 상냥했고, 어린 동생들도 잘 챙겨주었기에 남의 나라 말처럼 흘려들었죠. 그랬던 아들이 말만 하면 화를 내고 툭 하면 문이 부서져라 닫고 나가버리니 제가 받은 충격은 가히 핵폭탄 급이었어요. 즐겁게 살아왔던 날들이 꿈처럼 허망하게 느껴졌어요.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자책하다 보니 알록달록한 무지갯빛 인생에 회색빛 먹구름이 낀 것만 같았어요.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엄마’라는 자부심을 깨다

4명의 아이들을 모유수유를 하며 키웠어요. 그러다 보니 쪽잠은 다반사였고, 한밤의 응급실행이다 뭐다 수시로 입원하는 통에 몸 고생, 마음고생을 참 많이도 했지요.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웃는 얼굴만 보면 피곤함이 금세 사라졌어요. 특히 4명의 아이가 옹기종기 모여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볼 때면 괜스레 뿌듯했어요. 좀 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오랫동안 품앗이 활동도 해왔고 부모교육도 틈틈이 들어왔어요. 그러했기에 저는 정말로 최선을 다하는 부모라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들에게 사춘기가 찾아오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아들은 그냥 하는 말에도 발끈하기 일쑤였어요. 학교에서 주는 안내장조차 보여주지 않았죠. 동생들에게도 수시로 화를 냈기에 아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어요. 마치 아들과의 모든 소통 통로가 막히는 느낌이었어요.

아이가 나를 밀어낸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어요. 마침 활동 중이던 독서회에서 아이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공감독서’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왔을 때, 암흑 같은 밤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구세주와 같은 등대의 불빛을 본 것만 같았어요. 비슷한 고민에 힘들어하는 다른 품앗이 멤버들과 함께‘공감독서’ 활동을 진행해보기로 했어요. 구미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공동육아나눔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품앗이 팀들은 청소년기 부모교육을 함께 준비해주기로 했어요.

너와 함께 걸어가고 싶은 마음 이미지

우리를 변화시킨 ‘부모교육’과 ‘공감독서’ 활동

처음에는 뭔가를 함께 하자고 하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아들의 철벽 수비에 부딪칠 것 같았어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온 품앗이 아이들과 함께한다고 해서였는지 아들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동참해주었죠.

저는 ‘청소년기 부모교육’을 통해 아이의 모든 행동이 모두가 거쳐 가는 성장기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청소년 아이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내 아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공감독서’ 활동은 매주 토요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엄마와 아이가 돌아가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줄까?’, ‘까칠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잘 말할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지요.

첫 번째 도서는 이태석 신부가 쓴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였어요. 각자의 느낌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해 하던 아이들이 차츰 토막토막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은 이태석 신부가 대단하고, 남수단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어요. 엄마들은 남수단의 아이들이 학교를 간절히 원하고 열악한 환경이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이태석 신부의 희생정신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어요.

저는 갑자기 중학생들에게 학교란 어떤 공간일지 궁금해져 질문을 던졌어요. 아이들은 학교는 억압하는 곳, 가기 싫어도 가야하는 곳, 공부해야 하는 곳이라고 대답했죠. 학교는 규칙과 공부를 강제하는 공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까칠하게만 보이던 아이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창 놀고 싶을 시기에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 불쌍해 보이기도 했지요. 첫 번째 활동에서는 말보다는 침묵하는 일이 많았지만 아이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도서는 『떨어진 한쪽 큰 동그라미를 만나』였어요. 자신에게 딱 맞는 동그라미를 찾아나서는 조각 이야기로, 지난 수업에서 희망과 자신감을 얻은 엄마들은 적극적으로 아이들과의 대화를 이끌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때 아들이 자신도 아직 동그라미가 되지 못한 조각이라고, 동그라미가 되는 동안 기다려줄 수 있겠냐고 질문을 던져왔어요. 처음에는 그 말이 엄마로서 아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었던 일이, 마치 아이에게는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빨리빨리 행동하라는 메시지처럼 들렸나 싶어 서운하게만 느껴졌어요. 그렇지만 아들에게 엄마도 쉬고 싶은 주말에 왜 공감독서를 하는지를 설명하고, 네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묵묵하게 기다려주겠다고 대답했어요. 아들이 내 말을 몇 퍼센트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을 담아서 말했어요.

그날 이후 제 진심이 아들에게 얼만큼 전해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 있던 벽은 조금 얇아진 기분이에요. 그건 함께 품앗이를 하던 엄마들과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했어요. 만약 구미시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이 혼란의 시기를 아들과 함께 잘 견뎌낼 수 있었을까요? 공감도서 활동을 통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아이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작지만 큰 소망이 생겼어요.


두번째 사례

2018 양육비 이행지원 서비스 이용 우수사례_지속적인 모니터링 서비스를 통한 양육비 지급

☞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지속적인 모니터링 서비스를 통해 성년이 된 이후에 미지급 양육비를 전액 지급받은 사례를 소개합니다.

  • 신청인 L씨
  • 피신청인 S씨
  • 자녀 1명

성년이 됐지만 미지급된 양육비를 받고 싶어요

성년이 됐지만 미지급된 양육비를 받고 싶어요 이미지

양육비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하다

2012년 2월, 신청인(양육자) L씨는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와 협의 이혼을 했습니다.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는 자녀 양육비로 이혼 신고 다음날부터 미성년 자녀가 성년에 이르는 전날까지 월 50만 원을 지급하기로 양육비 부담조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는 법원 판결 이후에 단 한 번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자녀는 현재 성년이 되었고, 신청인(양육자) L씨는 미지급된 양육비를 받고자 2016년 7월,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가 미지급한 양육비는 총 2,700만 원이었습니다(월 50만 원씩 54개월). 그 당시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는 영어학원 운영 경험이 있었으나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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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모니터링 서비스 끝에 얻은 성과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으로 2016년 9월 5일 신청인(양육자) L씨와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는 양육비에 대한 합의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청인(양육자) L씨에게 미지급 양육비 2,700만 원 중 1천만 원이 지급되었습니다. 또한,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가 신청인(양육자) L씨에게 2016년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월 70만 원을 매달 지급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법원 판결 이후에 양육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양육비이행관리원의 도움으로 신청인(양육자) L씨와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가 양육비를 합의하게 된 것입니다. 합의서 작성 이후, 양육비이행관리원은 매월 양육비 지급 여부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였고, 그 결과 미지급 양육비가 전액 이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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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양육비 전액 완납이라는 성과를 얻다

또한, 모니터링 과정에서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의 건강악화 소식을 알게 된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피신청인과 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대화 등을 유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신청인(양육자) L씨 측의 요청으로 아직까지 적극적인 관계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피신청인과 자녀와의 관계를 증진하기 위해 중간 다리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합의서 작성 이후에도 양육비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육비이행관리원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독려와 설득으로 피신청인(비양육자) S씨는 미지급된 양육비 없이 2018년 9월까지 양육비를 모두 완납하게 되었습니다.

신청사유
  • - 미지급 양육비를 받고자 양육비 이행지원 서비스 신청
지원결과
  • - 양육비 합의 → 미지급 양육비 2,700만 원 중 1천만 원 일시금으로 지급
  • - 신청인(비양육자) S씨, 신청인(양육자) L씨에게 월 70만 원 지급
    (2016년 10월 ~ 2018년 9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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