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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 칼럼

일상 속의 ‘다문화’

다르고도 비슷한 우리 돌아보기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들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것은 대체로 불편하다. 내 주변에 나와 생각이 딱딱 맞고 긴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자기 맘처럼 읽어주는 사람들만 있으면 사는 게 참으로 수월할 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내 맘 같지 않은 남편, 아내, 자식, 부모님, 직장동료, 상사, 이웃들과 부대끼다 보면 마음속에 답답함이 쌓이고, 자꾸 상대방 생각이 ‘틀린 것’ 같아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어진다. 어떤 때는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느니 아예 상종을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사람들이 다 내 맘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되뇌다가 드는 생각, 근데 그게 좋을까? 모든 이들이 나와 똑같은 생각, 감정,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싸울 일도 타협할 일도 양보할 일도 없다면 나는 더 행복할까? 가정에서 일터에서 내 생각에 이견을 다는 이가 없어서 뭐든 내가 계획한 대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일의 결과는 더 좋은 모습일까? 자신이 없다. 그렇게 되면 내 생각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 더 좋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안 풀리는 문제가 있어도 다르게 생각해볼 기회가 없으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똑같은 오류를 계속 반복할지도 모른다. 다 나와 똑같으면 인생의 ‘괴로움’은 사라질지 몰라도 ‘지루함’이 자리 잡을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관없이 사회는 내 맘 같지 않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우리는 그들과 같이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의 안녕을 위해서는, 그들을 내 뜻에 맞게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어떻게 협력할지 고민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다르다’는 시각으로 ‘이주민’을 보는 것

‘다름을 존중하자’는 말이 가장 흔하게 쓰이는 상황은 ‘다문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인 것 같다.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자가 증가하자 이전에 ‘단일민족사회’에서는 별로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와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사람과 함께 살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다문화역량’, ‘다문화인식’, ‘다문화감수성’ 교육이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고 그때마다 꼭 강조되는 것이 ‘다름을 인식하고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접근이 충분히 일리가 있고 좋은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꾸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두 가지 의문이 들어서 그렇다.

첫째,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다름’은 엄연히 존재하는데, 왜 이 말을 유독 ‘이주민’과 함께 사는 문제에 국한에서 강조할까? 앞서 말한 것처럼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맺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일인데 말이다. 이런 식의 접근이 ‘다름’을 자꾸 민족 간, 인종 간의 차이로만 국한하는 것 같아서 찜찜하다.

둘째, 이주민과 함께 사는 문제에 접근하면서 자꾸 ‘다름’을 강조하다 보면, 서로 공유하는 ‘비슷한 점’을 간과하게 되지는 않을까? 인간관계라는 것이 뭔가 비슷하고 서로 마음 맞는 것이 기반이 되어야 편안하고 즐거울 것 같은데, 자꾸 ‘다름’을 이야기하면 관계를 맺기 위해 불편해도 억지로 노력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주민과 공존하는 문제에서 ‘다름의 존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이 불편하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공통적인 기반’을 혹시 놓치게 될까 봐 그렇다. 그래서 나는 ‘비슷한 점’을 찾아보려고 하는 노력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점을 찾아보기

따지고 보면 ‘다르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나는 지금 영국에 산다. 여차저차 한 이유로 우리 가족은 오랜 한국 생활을 접고 2년 전에 이곳에 왔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사는 내내 ‘다문화’라고 불렸다. ‘혼혈’이라거나 ‘믹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매우 동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다른 점’을 찾아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를 ‘코리안’이라고 생각하고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을 떠나니 완벽한 한국사람이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다문화청소년, 결혼이주여성, 탈북청소년과 탈북여성을 지원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다. 그때 그들을 만나면 ‘다른 점’이 먼저 보였던 것 같다. 북한사람을 만나면 말투와 억양이 다른 점이 먼저 들렸고, 결혼이주여성을 보면 생김새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영국에는 북한사람들이 많이 산다. 여기서 북한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다. 이곳에서 그들을 만나니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말해도 된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리말’로 의사소통한다는 것은 기껏 억양이나 단어가 몇 개 달라진 것으로 트집 잡을 수 없는 엄청난 ‘공통점’이다. 전에는 남북한 사람들은 생김새도 구별된다고 생각했는데, 영국 사람들은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꼭 물어본다. ‘남한에서 왔니, 북한에서 왔니.’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에 우린 비슷하게 생겼다. 하긴 나도 이제 ‘굳이 구별하려고’ 살피지 않으면 누가 남한사람인지 북한사람인지 모르겠고, 이젠 그런 구별이 별로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한국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을 만나도 문화의 ‘차이’ 때문에 고생할까 봐 한국의 풍습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보니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의 문화는 비슷한 점이 많다. 쌀을 기본으로 하는 식생활이 비슷해서, 서양 음식에 질렸을 때 중국, 일본, 베트남 식당에 가면 한식당에 간 것에 버금가게 맘이 편해진다.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있는 전통적 유교 문화의 영향이 있어서 그런지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도 비슷한 것 같다.

내가 맺는 관계를 돌아보기

‘다문화’라는 말이 국제결혼가족이나 그 가정의 자녀를 일컫는 말이 된 지 오래다. TV 프로그램의 영향 때문인지, 다문화가족이라고 하면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다가 결국에 가족애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훈훈한 이야기나, 생김새가 다르고 한국어가 어눌해서 사회적으로 차별을 받는 속상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이런 이야기가 사회에 주는 교훈도 비슷비슷하다. 다름을 인정하자든지, 고정관념이나 차별을 경계하라든지, 역지사지해보라든지. 그런데 그건 ‘다문화’의 맥락에만 필요한 교훈이 아니다.

나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우리가 맺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다른 점’뿐만 아니라 ‘비슷한 점’에 대해서도 주목하여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가치와 생각에 대해서 확인하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통합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자꾸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아야 ‘다문화’가 우리 사회에 던진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문제를 우리 자신의 성장과 삶의 변화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온 이주민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기여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안에도 늘 존재했던 다양성의 문제를 좀 더 섬세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아닐지.

필자소개

이향규

12년 전에 무지개청소년센터(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가 처음 만들어질 때 부소장을 지냈다. ‘다문화청소년’을 돕는 일을 했다. 10년 전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한국교육개발원 소속)가 처음 만들어질 때 연구기획팀장을 지냈다. ‘탈북청소년’을 돕는 일을 했다.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청소년 지원 연구와 사업을 했다. 지금은 이주민이 되어 영국에 산다. 그간의 경험을 모아 『후아유』(창비교육, 2018)라는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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